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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나

 

 

 

며칠 전 잠깐 같이 일했던 사람들과 식사 자리가 있었다. 우리는 비슷한 나이 또래였고 한 명은 회사에 들어가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됐고 다른 한 명은 이번 여름에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난다고 했다. 나는 이제 막 또 다른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오래 사귄 남자친구가 있는 한 명은 결혼이라는 이야기만 나오면 아빠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고 말했다. 영국으로 공부하러 간다는 그 친구의 아빠는 떠나는 것에 적극 반대한다고 말했다. 무지 속상해 한다고 말이다.  

 

그런 이야기가 오고 갈 때 나는 우리 아버지에 대해 생각했다. 아빠랑 나는 대화를 하지 않는다. 몇 마디 말을 나누는 것 조차 어색하다. 밖에나가 사람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는 전혀 티가 안난다. 서로 그런 티를 내지 않기 위한 암묵적인 약속이 있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어색하지 않은 부녀 사이일 것이다.  겉으로는 멀쩡할 지 몰라도 나는 무척 불편하다. 그리고 언젠가 이 모든 걸 참지 못하고 나는 소리지른 적이 있었다. 아빠와 엄마에게. 둘 다 한테. 심한 소리를 했다.

아슬아슬한 얼음판 같이 조심스러운 침묵을 나는 깨고 싶다. 벽을 부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나는 아빠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은 게 분명하다. 그렇지만 내가 먼저 나서기에는 상처라고 불리어지는 이상한 덩어리들이 뭉쳐져 마음을 메우고 있다.

나는 엄마와 친한 친구처럼 지낸다. 엄마에게 거의 대부분의 사건들, 생각들을 말한다. 아빠가 집에 들어오면 엄마와의 대화를 멈추고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문을 닫는다. 아빠가 하는 행동들 대부분이 마음에 안든다. 티비를 크게 틀어 놓는 것, 청소를 하지 않는 것, 지저분하게 먹고 어지르는 일. 등등 셀 수 없이 많다. 내가 정말로 아빠를 싫어하게 된 원인이 무엇일까.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들은 변명에 불과하다. 어떤 하나의 사건도 아니다. 몇 년에 걸쳐 많은 일들이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서 행해졌다.

이해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었고, 남자라는 존재를 혐오하는 동시에 집착하게 되었다.

한 번의 말로, 한 번의 글로 내 생각을 정리해서 풀어내기에는 무리가 있다.

아버지. 내게는 어떤 사람일까.

언니는 이미 귀를 닫고 입을 닫고 마음을 닫았다. 포기했다. 아버지라는 사람한테서. 그 무엇도 기대를 하지 않는다.

나는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가족은 나한테 울타리 같은 공동체였으면 한다.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서로 충고해주며 한없이 마음을 써주는, 어떤 이익과 이해관계가 끼어들 틈이 없이. 그저 순수한 마음이기를. 마음 놓고 웃어도 울어도 되는 관계이기를 바란다.

나의 욕심인가. 이상이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

엄마가 불쌍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모든 책임을 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엄마뿐이다.

나도, 언니도, 아빠도 눈앞에 처해있는 상황에 당장 짜증이 나고 해결하기보다는 무시해버리고,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빠는 불만이 있으면 엄마한테 토로하고 언니와 나도 아빠에 대한 불만을 엄마한테 말한다.

서로 이야기 하지 않는다. 의견을 주고 받고 대화라는 것을 나눠본 적이 없다. 서로 간에 참여는 없다.

 

아빠는 내가 결혼을 하고 애기를 낳으면 무슨 말을 할까. 아니 무슨 말이라도 할까.

내가 집 앞에서 남자친구와 둘이 있는 걸 봐도 아빠는 그냥 가버린다. 어?어, 이러고 빠르게 사라진다. 나도 어, 아빠.

조금 놀라다 눈치를 보며 서로 각자 갈 길을 가는 사이.

단순히 아빠의 성격이 원래 이렇다 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는 원망하고 분노하면서 지낸 지 오래 되었다.

대상은 아빠한테로 쏠려 있다가, 나한테로 였다가, 가족이었다가, 그리고 어떤 사람이었다가.

이렇게 반복되고 있었다. 

 

아무리 엄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내가 엄마한테 기대는 일이 많아도 나는 항상 애정에 허기져 있다.

집에 아빠와 둘이 있으면 각자의 공간에서 나오질 않는다. 아빠는 거실을 지배하고 있고

나는 방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잠깐 나가서 필요한 것들만 챙겨서 방으로 들어온다.

내가 아빠라는 사람을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단어들을 적는다.

버릇, 습관, 천성은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면서 다시 분노하고

아버지라는 사람에 대해 그 어떤 것도 믿을 수 없다고 믿는다.

자기 말만 옳은 사람과 무슨 말을 할까 싶기도 하면서

평생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라는 죄책감? 같은 게 밀려 온다.

사실 내가 체념한 적이 있었을까.

애증이라는 단어가 이럴 때 적합한 것 같다.

 

 

아버지. 아빠.

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아빠가 아니더라도 누군가한테 털어 놓고 싶다.

엄마와는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싸우게 된다. 내가 엄마를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되어 보려는 노력이 있다면 나는 엄마에게 아빠에 대해 더 이상 말하기 어려워진다.

 

숨이 막힌다.

 

아빠와 내가. 둘이서 말할 수 있는 시간이 오게 될까.

쭈뼛쭈볏. 뻘쭘하게 어색한 시간을 견디면서..

결국 편안한 날이 오긴 할까.

가족 넷이 함께 있을 때면 불안하다. 최대치의 불안함이다.  

순간의 따뜻함. 마저도.

불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