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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 세이사쿠의 아내

 

 

 

 

누군가 필요하다.

간절하게 소망할 뿐.

현실은 꿈속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2013년 1월 31일. 서울아트시네마에 다녀왔다. 처음 가보는 영화관이었다.

생각한 것 만큼 꽤, 운치 있는 영화관이었다.

실버영화관이 인상적이었는데 다섯시쯤 찾아갔을 때 할머니,할아버지들이 많았다.

실버영화관은 55세 이상부터 2천원에 관람할 수 있다. 삼포 가는 길이 상영되는 것을 보고 나도 보고싶은 마음이 들었다.

낙원상가 4층에 위치하고 있는 서울아트시네마는 엘레베이터에서 내려 들어가는 입구에서 탁 트인 정원을 만날 수 있다.

높은 곳은 아니지만, 탁 트인 시야 덕분에 내가 높이 솟아난 느낌이었다. 지하에 있는 영화관과 달리 흡연구역도 명당자리에 있었다.

표를 사러 갔을 때 사람이 별로 없어 흡연구역에 서서 인사동을 내려다 보았다. 삼성타워가 한 눈에 들어왔다. 그 다음으로 슬레이트 지붕들.오래된 바퀴들. 녹이 슨 옥상들이 시간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평일이었고 1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안개 낀 하늘이었다. 날은 많이 춥지 않았다.  

 

1층으로 내려와 노란 불빛과 자동차 소음, 매연이 질주하는 길을 건넜다. 낮인데 밤 같은 느낌을 주는 이 곳은 어렸을 때

부모님과 함께 차를 주차시키기 위해 왔던 곳이다. 쾌쾌한 냄새가 나는 지하도 같은 이 길은, 내가 좋아하는 곳이다. 반갑고 기억나는 곳이다.

 

인사동을 구경했다. 늘 가던 길을 갔고 새로운 길을 시도하지 않았다. 직진에서 직진. 한 줄로 왔다 갔다 하고 끝.

가게를 구경하다 무안한 일을 만났고 기운이 빠져 얼른 카페로 길을 틀었다.

 

 

 

 

 

 

 

 

카페에서 오랫동안 있었다. 시집을 조금 읽었고 생각나는 것을 적었다. 신세 한탄이 아닌 들려오는 것을 적으려고 노력했다.

모든 일기는 결국 자기 반성, 신세 한탄으로 시작하고 끝이 났다.

습작 또한 막연하게 시작하여 막연하게 끝나는 자기 위안의 글이었다.

'막연하다. 애매모호하다.' 이 두 단어가 아직까지 나를 따라다닌다. 도망가고 싶을 때마다 돌아보면,  그들이었다.

 

 

저녁이 되고 영화시간이 임박해 오자, 어둡게 변한 서울아트시네마에 사람들로 가득 붐볐다.

중국? 일본? 관광객들은 어떤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고. 다른 무리들은 세이사쿠의 아내를 보러 온 사람들이었다.

매점은 아담했고 일반 극장들과는 다르게 색다르고 맛있는 것들을 많이 파는 것 같았다.

가방이 무거웠고 혼자서 들고 들어가면 번거롭고 힘들 것 같아 생수 한 병만 사서 입장했다.

굉장히 오래된 영화관이었다. 극장은 컸고 병을 놓을 수 있는 데가 없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시네마테크협의회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관람 주의 안내를 틀어줬다. 재밌었고 귀여웠다.

이거 보러 또 가야겠다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세이사쿠의 아내는 들어보지 못한 영화였고. 미리 정보를 찾아 보지 않고 봤다.

이 날 상영하는 영화는 두 개였다. 오후 세시 타임의 인 투 더 와일드와 저녁 여덞시의 세이사쿠의 아내였다.

미국영화는 보고 싶지 않았고 오랜만에 일본 영화가 보고 싶었다. 예전에 상상마당에서 본 일본영화가 오래 기억에 남았었다.

제목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한 글자? 였던 것 같다.

 

1965년에 만들어진 영화이다. 자세한 시대적 배경을 알고 보면 더 좋았을 수 있으나 영화를 보는 데 크게 상관 없었다.

 

 

 

 

 

 

 

 

 

 

 

 

사랑이라고 불리는 감정 보다 외로움이라는 고립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나는 잠깐 김기덕의 나쁜 남자를 생각했다.

마음이라는 것은 전염될 가능성이 충분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감이다.

육체와 정신을 나누지 않겠다.

이 영화는 그 구분이 없는 캐릭터들의 집합이다. 감독 역시 보고 듣고 말하고, 있는 그대로를 여과 장치 없이 끌고 나간다.

 

영화 속 캐릭터들을 잘 살렸다. 사소하게. 온정넘치게. 감독의 시선이 명확하다.

한 명 한 명의 포지션을 보여 준다. 조금 튀는 면이 없지 않지만, 영화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중요하지 않은 캐릭터가 없을 정도로

한 명, 모두가 캐릭터를 잘 치고 나간다. 필요 없는 대사와 액션은 과감하게 떨쳐 내고, 서사의 긴장과 함께 꼭 필요한 대사만 한다.

관객들이 자주 웃는 이유가 있다. 한 명의 디테일을 잘 살려서 한 마을의 집단의식이 어떤 건지 보여주고 있다.

마을 사람들의 역할이 한 몫 한다. 두 사람이 혼자라는 절벽 아래로 떨어지게 된 것도 이 사람들의 눈과 말이 한 역할을 했다.

캐릭터들이 말하는 대로 영화는 움직이고 의식은 달라지지 않음을 영화는 이어 나간다.

 

2년이란 시간 동안. 6개월 이라는 시간 동안.

사람의 감정은 한결 같다.

처음의 생각을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착각을 떨쳐낼 수 없다.

날 것 그대로의 사랑, 외로움, 혼자와의 싸움.

정열적으로 오직 자신과, 자신과의 싸움이다.

영화는 인간으로서의 사랑을 고찰한다.

하지 못할 것은 없다. 하지 않는 것 뿐인데. 우리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매번 진다.

오카네는 이뤄냈다. 자신과 맞서 싸우고 이겼다.

세이사쿠는 오카네를 동정할 수 밖에.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불쌍하게 여김은 사랑을 이길 수 없다.

 

전쟁에 나가기 전, 오카네에게 눈을 찔려 두 눈을 잃은 세이사쿠는

감옥에서 나온 오카네한테 당신의 마음, 혼자의 마음을 알겠다고 말한다.

마침내 당신이 얼마나 외로웠을 지 알겠다고.

 

세이사쿠는 몸의 일부분을 잃고 정신이 많이 쇠약해졌다.

쇠약한 틈을 타 외로움이라는 병이 세이사쿠를 장악했다.

결국 오카네는 외롭고 아픈 세이사쿠를 얻었다.

이제 오카네가 밭을 가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