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stine 2012. 11. 26. 02:16

 

 

 

 

 

             

 

     아주 이른 아침이었고, 거리는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나는 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계탑 시계와 내 시계를 비교해보고,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늦었음을 깨달았다. 서둘러야 했다. 이 사실을 깨달은 것이 길을 찾는 내 발걸음을 더 불안하게 했다. 게다가 나는 이 도시를 잘 알지 못했다. 다행히 근처에 경찰이 있어 그에게 달려가 숨 돌릴 틈도 없이 길을 물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 지금 나한테 길을 가르쳐 달라는 거냐?' '예. 혼자서 길을 찾을 수 없어서요.' '포기해라, 포기해.'

남자는 이렇게 말하더니, 마치 웃음과 더불어 혼자 있고자 하는 사람처럼, 내게서 홱 몸을 돌렸다.

 

 

comment, 카프카

 

 

 

 뿌연 어둠과 직면했다. 내 정신은 열여섯 살 이후로 멈춰있다. 정신이 멈춰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정신 연령이 더이상 성장하지 않고 있다는 건데, 내가 나에게 확신을 잃어버린 그 때부터 이 불안이 시작된 것 같다. '확신'을 확고하게 믿던 그 때는 내가 행복했을까? 너무 어렸다는 전제를 빼고는. 너무 어렸다는 정의는 내가 내린 걸까? 미성년의 신분을 가지고 나는 꽤 행복했던 것 같기도 하다. 세상의 중심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했으니깐. 그 일이 없었다면, 나는 사소한 즐거움이 뭔지도 몰랐을거고.애정이라는 단어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소소한 행복이. 그런 작지만 강한 힘을 지닌 것들이. 자칫 평범하게 보일 수 있는 것들에게 관심을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내 인생의 '계기'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던 시점. 그 시간.

 누구나 겪을 법한 일, 큰 일이 아닌 일이 아닌데, 자존심과 자존감이 높았던 내게는 정신을 못차릴 수 밖에 없던 시간들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런 작은 마음 가짐에 대해 알려준 사건을 잊지 않고 있다. 여전히 그 곳의 나로 현재에 머물러 있다. 애써, 온통 과거의 기억을 지우며 살고 싶어서 이사도 했고 개명도 했는데 나는 그 곳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다. 이것은 내가 시키고 있는 걸까? 그 때의 '나' 가 행복했으니깐? 친구라고 불리울 수 있는 이름들이 많았고. '인정' 받는다는 인상을 가족에게 줄 수 있었고 무엇보다 내 자신에 대해 내가 당당했으니깐. 그렇지만 나는 그 때의 내가 당당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현재도 당당하지 않다. 그 곳의 '나'를 무척 그리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날의 기억으로 나는 친구가 전화를 받지 않거나 문자에 답장이 없으면 전전긍긍한다. 그 친구가 나에게서 '영원히' 등을 돌려버린 것 같기 때문이다. 몇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런 일이 있을 때면 식은 땀이 날 때가 있다. 그리고 숨이 막혀온다. 그 곳의 '나'를 그리워하면서 동시에 증오한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났을 때에도 이 악몽은 지속된다. 더하면 더했지. 친구한테 뱉어내지 못하는 감정들을 남자한테 쏟아 부을 때가 있다. 내가 친구를 온전히 사랑할 수 없는 감정, 사랑 받을 수 없는 억눌린 감정을 그에게 표현한다. 엉뚱한 방식으로, 나도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소위 '객기' 라는 표현이 맞을까. 그렇게 그 사람과 나를 동시에 놓쳐 간다. 

 

 열여섯 살 겨울 이후로.. 나는 내 안에 갇혔다. 그 때도 엄마에게 부탁해 정신 상담을 받으러 갔지만 울기만 하다 나온 기억뿐이다. 상담자는 휴지만 건네주었고. 아니, 사실 무슨 말을 들었는지 기억이 안난다. 그냥 '위로'의 말 한마디..그거였겠구나.

망각한 채로 기억한다. 나는 지금 상담을 받고 싶다. 최근에 융분석심리학 수업을 듣고 내 안에 문제가 무엇인지 나 아닌 타인과 제대로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도, 아무것도 내 옆에 없음을 느끼는 하루 하루가 속상하다. 이뤄놓은 것도 없는 내가, 남 앞에서 당당해 질 수 없는 현재가 야속한 건지. 역시나 이것 또한 현실 도피이구나. 라고 생각에 생각을 한다.

 스무살 대학에 합격해서 기쁜 마음에 수첩에 적던 글을 기억한다. 이 학교를 다니면서, 어디에 편입해, 어디 대학원을 간다..

멋모르던 내가 사회를, 현실을. 이렇게 조금씩 아주 조금씩 알아가는구나.. 라고 단정짓는다.

 문제는 분명히 있다. 나는 천천히, 작은 마음으로 작년의, 삼 년전의, 육년 전의, ... 열여섯의 나를 안고 일어서 걸어가야겠구나.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지고 싶다.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정말로 성장하고 싶다. 욕망이 욕망으로 멈추지 말기를.

 그저 말 뿐인, 위로밖에 되지 않는 존재가 아니길. 내가 떳떳할 때까지.

 

 잠시 변화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