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그대를 차지하거나 아니면 죽는 것

 

 

 

 

 

 

 

 

 

 

깊은 잠으로 들어간다

전화가 울리고

번호는 흐릿하게 떠올라

어느 한 기억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불시에 받은 전화로 나는, 멀리 아주 멀리

내가 숨쉬는 곳을 바라본다

 

 

 

 

 

 

망친 어떤 여름날처럼, 질병처럼, 또는 다른 불쾌한 일처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인가. 전에 그가 다른 침대에서 다른 여자 옆에서 잠들기 위해서 밤 열두시 반에 내 침대에서 일어날 때 그것을 감수했던 것처럼 그렇게..... 아마 여행이 아니었더라도 모든 일이 똑같이 일어났을 것이다. 순수한 감사의 시간은 이미 지나갔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그것을 어쨌든 그렇게 해석했다. 순수한 감사의 시간은 사랑의 첫 단계이다. 어떤 사랑이나 그럴 것이다. 어떤 사람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데 성공한다. 우리가 원했던, 또는 심지어 우리 안에 파묻혀 깨어나지 않은 채 숨어 있던 특성들이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 우리가 더불어 사는 데 익숙해 있던 다른 특성들을 몰아낸다. 우리는 스스로를 다시 인식하게 된다. 우리는 더 아름답고 더 부드럽고 현명하다. 우리는 우리의 소심함과 우리의 악의에서 구원된다. 우리는 가장 사악한 적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우리의 행복으로 모든 나무와 모든 거리와 모든 순간을 환하게 비추고 그때까지 발견 하지 못했던 그것들의 아름다움에 대해 경탄한다. 우리는 하늘과 비와 바람과 우리 자신이 하나가 된 것처럼 느낀다. 우리는 마침내 이 세상에 속해 있고 또 마침내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 프란츠를 만난 후 시 한 편이 몇 주일 동안 내 심장처럼 내 몸 안에서 고동쳤다.

"하늘이 대지에 고요히 입 맞춘 것 같았네. 대지는 아른거리는 꽃들 속에서 이제 하늘을 꿈꾸어야 하리./ 나의 영혼은 날개를 활짝 펼치고/ 집으로 날아가듯 먼 나라들을 날아다녔네." 우리에게 마법을 걸어 지금의 존재가 되도록 만든 사람에게, 예전부터 항상 되고 싶었던 존재가 되도록 만든 사람에게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주고 싶다. 아무런 조건 없이 그 사람을 섬기고 싶어 한다. 그가 우리에게 이루어준 기적을 위해서라면 우리의 생명이라도 내놓을 것이다.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왜 그 사람이었는지 묻지 않는다. 그가 그 사람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고쳐 쓴다. 인생이 우리에게 뒤늦게 목표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서 그것을 느끼기 때문에 우리가 은밀하게 우리의 창조자라고 일컫는 그 사람과 만난 순간을 우리는 신성하게 여긴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랑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생각해본 끝에 나는 바로 그것이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가장 진정한 느낌이라 믿고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날 때까지, 사소하고 하찮은 일이지만 그것으로도 우리를 놀라게 하고 우리의 무방비 상태를 인식시키기에는 충분한 어떤 일이 일어날 때까지. 그러다가 이유 없이 약속 시간에 늦게 오고 전화가 오지 않고 우연히 사진 한 장이 발견된다. 그것으로 불안의 시간이 시작된다. 우리가 배반당했다고 생각되는 그 한 시간이면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파악하기에 충분하다. 어떤 사람은 연필처럼 얇은 산꼭대기에서 거의 바닥에 닿지 못한 채 손으로 하늘을 움켜쥐고 발끝으로 서 있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산들바람만 불어도 그 사람을 절벽으로 내팽개칠 수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천장이 대성당처럼 높은 수영장의 미끄러운 타일 위를 걸으며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관객들의 큰 웃음소리가 메아리치는 가운데 넘어질 상황에 처해 있다. 나 자신은 백 개의 문이 닫혀 있는 둥근 방 안에 있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악몽이 실현된다.  우리가 자신을 넘겨주었다.

그러나 그때 연인이 온다. 시간을 놓쳤지만 그래도 그가 온다. 전화가 오지 않은 것은 전화 고장으로 밝혀진다. 우연히 발견된 사진은 하찮은 것으로 입증된다. 우리가 두려워했던 일은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의혹은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 프란츠가 여행을 떠나야 한다고 말했을 때 예언이 실현되었다.

프란츠가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게 된 후로 비로소 나는 그에게 다시 감사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나에게는 다시 선택의 여지가 있다. 나는 그 세월 동안 내내 여기 내 방에 앉아서 프란츠를 사랑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몇 년이 아니라면 아마 통틀어 몇 달을 프란츠를 애도하며 울며 지냈을 때조차도 그것은 나의 자유로운 의지였다.

148p~150p

 

 

그의 피부를 쓰다듬으면 나 자신을 쓰다듬는 것처럼 느껴진다. 가끔 프란츠와 나 사이를 구분할 수 없다.

p.150.

 

우리는 몇 시간동안 온전히 우리 육체의 신비 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확신했다. 프란츠는 청춘의 사랑을 제외하고는, 아니 어쩌면 그녀까지도 포함해서 어떤 여자도 나만큼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했고, 나는 프란츠가 없다면 더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프란츠는 말로 할 수 없는 아주 진부한 이야기를 부끄러움 없이 얘기하고 게다가 그것을 믿는다는 것이 놀랍다고 말했다. 나는 프란츠의 갈비뼈와 골반 사이의 움푹한 부분에 키스했다. 프란츠의 그곳은 소녀처럼 부드러웠다. 나는 프란츠에게 왜 야만인처럼 보이는지 알고 싶었다.

p.151

 

 

예기치 않게 닥쳐왔던 나의 행복은 그만큼의 불행으로 바뀌었다, 프란츠가 이십 년이나 이십오 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아내와 함께 여행을 떠났던 이후로, 무엇보다도 그녀를 향한 그의 부드러운 미소를 내가 본 이후로, 나는 그가 나를 사랑하는 것인지 의심했다. 나는 끊임없이 고백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 고백도 나를 오래 진정시키는 못했다. 프란츠가 그 말을 하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오히려 더 길었다. 프란츠가 나를 사랑한다고 맹세해도 나는 몇 분 후 다시 그 말을 듣고 싶어 했다.

p.159

 

 

너는 그 남자의 최고의 것을 갖고 있잖아. 아테가 말했다. 그는 너를 사랑하고 너를 갈망하고 네 마음에 들고 싶어 해. 대체 왜 그 나머지를 갖고 싶어 하는 거니? 꼭 그의 셔츠를 다림질하고 그의 기분이 안 좋을 때 받아주고 그의 의미를 인정해 주고 그의 사랑을 위해 요리를 하고 싶은 거야? 다른 여자가 그런 걸 대신 해주니 오히려 좋아해야지. 그는 그녀 옆에서 자지만 너와는 함께 자잖아.

p.154

 

 

프란츠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을 갖게 된 이후로 나는 의지가 약해져서 일상의 우연 속에서 인식될 수 있는 모든 신호를 내게 주어진 결정으로 감사하면서 받아들였다.

p.177

 

버스 정류장으로 내가 배웅을 나갔을 때 프란츠는 흰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 밤은 부드러웠다. 프란츠는 상의를 느슨하게 걸치고 있었고 어둠 속에서 셔츠가 빛났다. 프란츠는 에든버러에서 아내의 어깨에 팔을 둘렀던 것처럼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있었다. 프란츠가 항상 그랬던 것처럼 열두시 반에 집으로 가는 길이었는데도 왜 내가 행복했던 것일까. 그러나 나는 행복했다. 정확하게 기억이 난다. 프란츠의 셔츠가 빛났고 밤은 부드러웠고 비는 오지 않았으며 나는 행복했다.

p.191

 

 

 

 

 

 

 

그가 내 삶에 없다는, 전제를 생각 하면 무척 겁이 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내 일상은 위태롭고 혼란스럽다. 그가 내 연락을 받지 않는 시간은 그 시간 자체로 공포이면서 내가 존재하지 않던 시간이었다. 그런 시간들을 내가 처음 겪은 것도 아닌데, 나는 여전히 어떤 종류의 이별도 두렵다. 믿고 싶지 않다는 믿음이 내 머릿속을 지배한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면 조금은 달라질 것이다. 그렇게 가을이 지나고 겨울쯤에 그의 흔적을 따라 거리 곳곳을 돌아다니고 싶은 생각에 사로 잡힐 것이다.

현재도 그와 함께 지냈던 시간을 추억한다. 그 시간에 나는 최선을 다 했었다. 잠시라도 떨어져 있는 시간을 내가 견디지 못해 그를 힘들게 했지만 나는 그와 함께라면, 어디든 가고 싶은 마음에 휩쓸렸다.

가끔씩, 불현듯이 찾아오는 추억이 아니라 아침 점심 저녁 새벽의 시간들을 파고드는 기억이다.

내게는 7개월이 짧은 시절은 결코 아니다. 많은 것들을. 온통 그와 함께. 할 수 있었고 해야만 했던. 나의 욕심이었다.

앞으로 혼자 있는 시간이 나의 욕심과 고집을 꺾는다 해도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될 때 다시 나를 지배할 것들이다.

나는 혼자 있을 때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와는 180도 다른 사람이 되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