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핀 무꽃.
이틀 뒤에는 더 많은 꽃이 피어 있었다. 큰 꽃망울 아래로 조롱조롱 매달려 있는 꼴이 얼마나 귀엽던지.
제 몸에 맞게, 꼭 알맞게 피어난 꽃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참 설렜다. 왠지 모를 희망이 햇살과 함께 와락 나에게로 안겨졌다.
어제는 사람들과 술자리가 있었다.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던 도중에.. 한 분과 조금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던 분. 정반대의 생각들이었는데, 통했다.
긴 줄의 끝점과 다른 끝점.
반대의 의견들은 결국 하나의 생각이었던걸까.
하루 하루 이상을 품고 먼 미래는 조금 달라질 줄 알았던 삶.
서른이 넘어간 그 분은 이제 그런 것들(이상,꿈)은 별로 없다고 했다.
기대를 품지 않아도 나는 미래의 여기에, 똑같이 앉아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과의 모임은 즐겁다. 그 안에서 내가 모르는 것들과 많이 마주친다.
전혀 생각치 못했던 것들...
그래서 늘 버겁고 설렌다.
내가 철썩같이 믿고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그 분 자신은 전혀 믿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 나도 어떤 것을 절대적으로 믿을 수 없다면서 모든 게 의심된다고.
그 분도 그렇다고 하셨다. 심지어 자신이 태어난 날까지 어떻게 다 믿을 수 있냐며.
나도 이 생각에 동의하는데, 사소한 증거들을 가지고 믿을 수 있다고 했다.
사진이라든지, 내가 믿고 싶어하는 부모님이라든지.
다 나의 욕망에의 욕망.
의심은 해야 한다. 의심이 없는 삶은 끔찍하다.
인정한다. 진실이라고 불리어지는 것들. 거짓이라고 말하는 것들.
이 간격 속에서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
몇 분간의 짧은, 집중적인 대화였다. 교실에서는 말한 적이 없는 분이었고. 글로만 마주하던 분.
내가 본 그 분은 자아가 강한 분 같았다.
자신이기에, 자신이 뭐 별거길래. 뭐든지 흘러가게 놔두고 싶어하는 것처럼.
당당했다. 자신의 자세에 무척 충실했다.
그리고 자신이 쓴 글에 대한 '이해' 의 필요성
'이유'를 말하고 싶어했고
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좋은 시란 무엇인가. 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쓴 시에 대한 논리적인 어떤 것. 구성. 시 안에서 대변할 수 있는 것들
시에 보여야 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어떤지 잘 모르겠다. 시인의 말이 꼭 필요있을까. 싶기도 하면서 시인이 말해줘야 그때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문장들을
나는 사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시란 무엇인가.
습작생이 바라봤을 때, 나는 단순히 취향은 말할 수 있겠다.
누구를 좋아하며, 어떤 시를 쓰고 싶으며..
정확한 기준이 없다.
나는 나만의 것, 나다운 문장, 나의 정서.
하나라도 찾지 못했다.
아직은,
기다릴 필요가 있다.
기다릴 것이다.
꾸준히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혼자만의 틀에 갇히고 싶지 않다.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공유하며
자라고 싶다.
서른이 되면 뭔가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는 그 분.
옆에 있는 다른 분은 스물 일곱이 되든, 스물 여덞이 되든, 서른이 되든 아무런 동요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는 어떨까?
확실한 것은 뭐든 서른을 기점으로 뭔가를 이루기를, 말하고 다닌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 또한 변할 것이다. 스물 넷이 되면 뭔가 변할 줄 알았다는 어리석은 마음...
결과물을 바라고 나이를 먹어 갔는데. 정작 그 '바라는 마음' 만 있었다.
이기심과 욕심. 나밖에 모르던 길.
스물 다섯이 된 지금의 나는 큰 마음을 버리려고 한다.
자꾸 큰 것, 높은 것을 바라보고 사는 내가 얼마나 거짓덩어리인지.
조금의 여유도 없으면서 나를 다그치기만 하는 것이
미련한 일인지.
조금씩 깨닫고 있다고. 감히 말해 본다.
숲 보다는 나무를 본다.
이것도 나쁘지 않은 나이가 있다.
숲 보다는 나무를 봐야 할 때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부정하지 않겠다.
나는 지금 숲 보다는 나무를 보고 달려가고 싶다.
그 다음에 숲을 생각해도 늦지 않았으면 한다.
꼭 전체가 그렇게 중요한가.
전체적인 틀을 생각하다가 소소하게 가득 뻗어 있는 나무를 보지 못할 수 있다.
지금의 주제는.
지금의 나는.
저기 보이는 나무 한 그루를 향해.
뛰어 가야 함을.
그런 순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