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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갈 수 없다'는 명제

 

 

 

 

 

 

 10일 째 되는 날, 이미지가 스며나왔다. 마치 고백처럼,

 

    

「La Jetee」         

           

 

 

 

 

 

 

내면을 사랑한 이 사람에게 있어 고뇌는 그의 일상이었고,

 글쓰기는 구원을 향한 기도의 한 형식이었다.

 

카프카

 

 

 

 

 

 

 

                 

  

맹세는 따뜻함처럼 우리를 배반했으나

 

맹세는 따뜻함처럼 우리를 배반했으나

우는 철새의 애처로움

 

                            

                           허수경, 「울고 있는 가수」

 

 

 

사람의 어리석은 일 가운데 하나는 맹세를 반복하는 것이다.

맹세는 대게의 경우 자발적인 절실함의 소산이다. 미래의 자신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맹세를 통해 자신을 옭아매어야 할 필요가 있다. 맹세는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를 구속하는 방식이지만, 대부분 그 구속은 무력한 것이 된다. 맹세는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무력하기 때문에 반복된다. 젊은 날 얼마나 많은 맹세가 우리를 찾아 왔다가 흔적 없이 사라지는지. 늙어간다는 것은 맹세의 무기력을 뼈아프게 알아간다는 것. 그래서 함부로 맹세를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녀의 삶에서도 사소한 맹세의 시간들이 있었다.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회한으로 남은 맹세도 있지만, 그 맹세조차 기억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기억에서 사라진 맹세들이 만약 죽음에 임박해서 한꺼번에 떠오른다면, 그런 무책임한 인간의 일생에서 가장 가혹한 형벌이 될 것이다.

 

 

「사랑의 미래」 이광호

 

 

 

 

 

 

 

 

 

 

그리하여 이 세상이 끝나는 날, 너는 내 꿈속의 낯선 사람의 뒷모습이었을 뿐이라고. 스물 네 시간 안에 이루어진 비정서적이고 의사소통이 부재한 섹스에서 멀리 보이는 배경일 뿐이었다고. 내가 너의 생에서 무엇이 될 수 있나?

 

배수아

 

 

 

 

손을 잡으면 놓을 때를 잘 알아야 한다. 무심코 잡은 손을 놓는 순간을 놓치면 곧 서먹해지고 어색해진다. 버스에서 내리다가 학교 앞 지하도에서 올라오는 그와 마주쳤다. 인사를 한다는 것이 그의 손을 잡아버렸다. 야위고 뼈만 남은 듯한 손이 내 손안에 있었다. 강인한 손뼈의 감촉, 야위었지만 그의 손은 거친 연장 같았다. 눈으로 반가워하며 그도 내 손을 꼭 쥐어 주었다. 바로 손을 놓았어야 했는데 손을 잡은 채 걷기 시작했다. 반가움은 사리지고 곧 침묵 속에 놓이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놓으면 될 순간을 놓치고 나니 점점 더 내 손이 의식되었다. 턱 내려 놓자니 어색하고 그렇다고 계속 잡고 가자니 손바닥에 땀이 밸 정도로 긴장이 되었다. 그도 마찬가지인 듯 했다. 우리는 말없이 걷기만 했다. 우리는 어정쩡하게 손을 잡은 채 학교 쪽으로 올라갔다. 언제 손을 놓아야 할 지 계속 신경 쓰다보니 손바닥에 식은 땀이 배어나왔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가시밭길 같더니 나중에는 마음이 고요해졌다. 거리는 소란스러웠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주변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을까 신경쓰이던 마음도 눈처럼 녹아버렸다. 그렇게 그의 손을 잡고 영원히 걸어가고 싶었다. 도로변의 호텔을 지났다. 서점을 지나고 옷가게를 지났다. 우동 냄새가 새어나오는 식당을 지나고 은행나무가 줄 서 있는 계단을 오르고 학교 정문이 보이는 큰 길 신호등 앞에 설 때까지도 우리는 침묵 속에서 손을 잡고 걸었다. 길을 건너고 대극장이 마주 보이는 곳에 다다를때 까지도. 학교 안은 소란스러웠다. 게시판이나 공중전화나 나무의자마다 학생들이 앉아 있거나 서 있었다. 그가 나를 바라보며 이제 손을 놔도 되겠나? 물었다. 허락을 구하는 말투였다. 나는 그때야 그의 손을 놓았다. 내 어깨를 두드려주고 성큼성큼 학교 안으로 그가 먼저 걸어들어갔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내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본다.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들만 떠오른다. 진실과 선함의 기준은 무엇인가. 올바름과 정의는 어디에 숨어 있는가. 폭력적이고 부패한 사회는 상호간의 소통을 막는다. 소통을 두려워하는 사회는 그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된다. 나중엔 책임을 전가할 대상을 찾아 더욱 폭력적이게 된다. 나부터 독립적이고 당당해지길 바란다. 숨김이 없고 비밀이 없으며 비난하지 않는 인간관계를 원한다.

 

함께 공유하면 상처가 치유될까. 잊을 수는 없겠지만 그때로부터 마음이 멀어지길. 바래진 상처를 딛고 다른 시간 속으로 한 발짝 나아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