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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멸감







유난히 까치가 우는 아침이면 기분이 좋았다. 늘 지나다니던 출근길에서 까마귀의 큰 소리가 들리면 그 날 하루는 너무 별로 일 것 같았다. 지금은 일요일이 끝나가는 밤 열 시. 오늘은 님포매니악2를 보고 왔다. 오랜만에 광화문 씨네큐브에 갔는데 흥국생명 빌딩 앞에 경찰버스와 경찰들이 있었고 정문은 폐쇄한 상태였다. 처음으로 후문이 있는 곳으로 가보았고, 영화 시작 한시간 반 전에 도착해 표를 샀다. 맨 앞자리 빼고는 거의 다 매진이었지만, 겨우 뒤에서 세번 쨰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님포매니악1 보다 2가 괜찮다고들 했던터라, 조금 기대를 하고 갔다. 기대 이상으로 내 취향에 딱 맞았다. 조금 더 아픔이 느껴졌지만..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정말 좋다. 감독의 가치관과 맞는다고 할까. 빛을 사랑하고, 자연을 흡수시켜 한 몸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능력을 가졌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굉장히 회의적이고, 반성적인 삶을 지향하는 것 같다. 빛의 움직임을 시적으로 나타내는 재주는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특이한 것을 지향하기 때문에, '반항' 을 좋아하고, 반항에 대한 모티프들을 사랑하는 영화인..그가 쓰는 음악, 그가 즐겨 보는 그림, 그가 걷는 숲속. 공감가고 대화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마음이 쉽사리 진정이 되지 않아, 이 밤에 도킹스피커에 아이폰을 꽂아놓고.. 무슨 노래를 들을까 하다가, 버스커버스커 노래를 틀었다.

가을밤, 잘할걸, 처음엔 사랑이란 게. 범준이 목소리는 안정을 주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최근엔 소년이 온다를 읽고 어마어마한 잔상에 갇혀 지낸다. 우울. 님포매니악2가 우울의 절정을 찍었다고 할까..

소년이 온다를 안읽었으면 어쩔뻔 했나.. 나는 심각한 무지에서 벗어날 길 이 없었을 지도. 잘 알려고도 안했으니깐.

예전에 3학년 소설창작시간 때, 임철우 단편소설을 읽고 발제를 했었다. 그때는 읽기 싫은, 쓰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한 거라(단순히 내 취향이 아니라는 이유로) 참여하고 나서 개운함도, 후회도 없었다. 그냥 빨리 자고싶은 마음뿐이었다.

그 때, 한강교수님은 임철우 작가는 평생을 5 18관련한 소설을 쓴다고 했다. 광주에서 직접 겪은 작가는 5 18 민주항쟁의 소설이 아니면 쓸 수 없다고.. 아마 나는 상상도 못할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원래 소설 읽으면서 잘 울지 않는데 이 소설은 마음이 정말 아팠다. 한 페이지마다 고스란히, 피냄새가 자욱하게 번졌다.

소년이 온다. 소리 없는 새. 누군가 발설하기 전에는 형체도 모르는.. 그렇게 곳곳에 소리가 숨겨져있다.

이시영 선생은 트위터에 릴케의 시를 인용하며 한강 소년이 온다에 누군가의 입김이 아니었으면.. 하는 표현을 했다.


지금 김c 최근 앨범이 나오고 있는데, 처음엔 무척 좋았으나 여러번 들으면.. 다 모든게 허무하다.


욕심이 없으니 열심히 살지도 않는 것 같은 이상한 논리?에 빠져 산다. 무언갈 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들지 않는다.

동기부여가 잘 안된다. 한량짓만 하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 도피만. 


주말엔 집에서 잘 안나가고 낮잠을 꼭 자고 먹고 자고 먹고만 반복하는데, 이번주는 이틀 다 외출을 했다. 어제는 용인 양지에 다녀왔고, 한 밤의 드라이브란.. 무척 설렘과 만족을 가져다 준다. 오늘은 내가 사랑하는 감독의 내가 좋아하는 소재의 영화를 봤으니 나는 이 하루에 대해 불만이 없어야 하는데, 미칠듯한 우울함에, 분노에 내일 어떻게 또 사무실을 나가야 하지. 하고 고민하고 있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욕을 먹고 나이 많다는 이유로 반말을 하고, 그 여자의 방패막이 되어주고, 거래처 사람들은 나한테 짜증내고. 이 짓을 몇번 더 반복해야 뿌듯할까. 



분노. 불안. 답답함. 우울. .    

이 네 가지가 나 인 것 같다. 



기쁨과 즐거움은 채 두 시간도 안가고..살기 싫다는 생각만 하다가 잠이 들면 시끄러운 티비 소리에 아침인 것을 깨닫는다. 



두 서 없 다. 산 만 하 다 그래 이게 나 . 

친구가 그랬다. 바닥을 치면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 스무살 때 그 말을 듣고 나는 어떤 희망을 가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