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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걸음

 

작년 12월에 여행을 다녀왔다. 종강과 동시에 급하게 가느라 마음도 몸도 고생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처음으로 아시아 국가권에서 벗어나 유럽으로 간 여행은 그리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 부족한 형편으로 가느라 엄마가 많이 힘들었고 나 또한 억지로 밀어 붙여서 가는 거 아닌가 싶은 마음 때문에 불안하고 불편했다. 

 

 

덴마크와 스페인, 각각 친구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유학생이었고 6개월 정도 머무르고 있었고 1월쯤에 한국에 들어 올 친구들이었다. 각 나라의 거리, 골목들, 상점, 하늘의 색, 햇볕, 공기의 냄새를 잊지 못한다. 마드리드는 꼭 다시 가보고 싶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반나절을 보냈다. 황홀했고 슬펐다. 소피 왕립 예술센터를 다 보지 못한게 너무 아쉽다.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가기를 기원해야겠다. 덴마크 국립 미술관, 루이지애나 현대 미술관은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덴마크에서는 조용하게 전시를 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국립 미술관의 고요함, 사람 발자국 소리, 정적, 어두워진 창 밖을 보면서 나는 지금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속해 있는 나라에서 벗어나 저 먼곳까지 가서도 나는 인간 관계 때문에 울었고 졸업을 앞둔 시점,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죄책감 비슷한 것 때문에 힘들었다. 엄마한테 미안했고 가족과 주위 사람들에게 창피했다.

스페인의 마지막 여행지, 친구가 있는 바르셀로나에서 갑자기 아프기 시작해 결국 응급실에 가야될 지경에 이르렀다. 보험 적용이 안되는 어마어마한 치료비를 감당하며 링겔을 맞고 또 맞았다. 한가득 약을 안고 다음날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그 때 나는 누군가 때문에 무척 화가 나 있었고 참을 수 없었다.

다시는 그 친구를 보지 않을 마음에 연락도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하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여전히 그런 감정에 쉽게 졌고 무기력해졌다. 남한테 서면 얼굴이 자주 붉어졌고 말을 많이 더듬었다.

 

 

어떤 결말도 없다. '종결 없음'의 의미를 찾은 소설처럼 분노하던 감정들이 여기 그대로 남아있다. 그 친구와는 연락을 가끔씩 하고 만났다. 지금은, 내가 하지 않으면 만나지 못할 친구가 되어버렸다. 더 이상은 만나지 않는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6월 중순이다. 면접을 보러 가로수길에 갔다가 3년 전, 자주 가던 술집을 보았다. 빛날 것 없는 추억이었다.  명확하게 떠오르는, 솟아오르는 감정을 다시 적어보려고 하다 그만뒀다. 더 이상 나의 시선이 아닌 대상을 그려내기가 버거웠다 그만두길 잘했다는 생각이다. 

학교를 졸업한 지 6개월이 넘어가고 있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지원할 회사에 넣고, 면접을 보러다니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어제는 내가 저지른 멍청한 짓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좀 피해를 봤다. 후회스럽다.

2011년 겨울이 지났고 2012년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