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하다고 믿었다. 내 삶은 신께서 버렸다고. 신은 나를 잊어버린 게 맞다고. 그렇게 생각을 했다.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에서 씨민은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떠난다'라기보다 '벗어난다'는 의미가 맞을 것 같다.
떠나다와 벗어나다의 차이는 무엇인가? 떠남은 나를 안고, 여기를 안고 다른 곳을 향해 어쩔 수 없이 떠난다는 것.
벗어남은 나를 여기에 버리고, 이 모든 걸 짊어지지 않은 채 여기에서 벗어나야만 한다는 것이다. 나에게서, 나로부터 오는 강요의 의미. 강조의 의미. 되새김질 하는 삶의 의미.
씨민은 딸을 위해,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하려고 노력한다. 씨민의 자의식은 남편과, 이 나라, 이 곳을 지배하고 있는 신에 대한 암묵적인 거부를 행한다. 침묵으로 씨민은 남편과 싸운다. 이란의 다른 여인들에 비해 고등교육의 수준을 받은 씨민은 나의 딸만큼은 이 곳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씨민의 계획대로 현실은 이뤄지지 않는다. 이민을 가자는 씨민의 의견에 완강하게 남편은 반대한다. 결국 둘은 이혼소송까지 가고 그 사이 나데르의 아버지는 넓은 집에서 홀로 치매와 함께 늙어간다. 딸은 극도로 불안해하고 부모님의 이혼과 별거에 마음을 졸인다. 슬퍼한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부모님께 표현하지 않는다. 꾹 참고 있다.
씨민은 애써 그런 딸을 모르는 척한다. 나데르도 굉장히 딸에게는 우호적이다. 아빠와 딸은 함께 공부를 하고 학교에 데려다 주고 데리러 간다. 누구보다 딸의 공부를 위해 노력한다. 단어를 체크해주고, 문제를 내준다.
임신을 한 채 가정부 일을 시작하는 라지에는 딸 아이를 데리고 출근한다.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를 간병일까지 한다. 급여가 너무 적다고 나데르에게 말하지만, 나데르는 30리알 위로는 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용변을 보고 몸을 닦여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라지에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서 이것이 죄가 될 수 있는거냐며 물어본다.
라지에의 어린 딸이 할아버지의 산소 탱크 벨브를 열었다 잠갔다 하고 할아버지는 숨을 잘 쉬지 못하게 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은 앞으로 셋이 있는 집에서 벌어날 상황을 암시한다.
라지에는 정말 힘들게 살아간다. 폭력적이고 자해를 하는 빚쟁이의 남편과 어린 딸, 뱃속에 있는 아이까지. 그리고 라지에가 맹신하는 신까지. 라지에의 삶을 더욱 혹독하게 만드는 것들이다. 라지에는 적은 돈이라도 벌기 위해 열심히 출퇴근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자세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정말 이 영화가 만들어져서 다행, 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슬람교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그저 여자들은 차도르를 쓰고 다닌다는 것. 그리고 가끔씩 티비 뉴스에서 이슬람교 국가는 아버지, 남편이 딸, 부인을 살해해도 법적으로 처벌받지 않는 다는 것. 이 정도로 대충 알고만 있었다.
네이버에서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를 검색해서 영화 리뷰를 읽어 보았다. 그 사람은 '이기심'에 초점을 두고 글을 쓰고 있었다. 이기심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도 복잡한 마음들이라고 나는 느꼈다. 복잡하고 아주 사소한 마음들.
나는 영화에서 나오는 어떤 한 사람도 밉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했다. 그 사람들은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고 모두 진심이었다. 다들 각자의 마음 안에서, 테두리 안에서 나 자신과 싸우고 있던 사람들.
주제 하나를 단정 짓기 어렵다. 복잡하다. 딸과 자신의 아버지를 태우고 가던 나데르 차 안을 비추는 햇볕마저 복잡하고 암담하다. 그리고 따뜻하고 슬프다. 가정교사를 쫓아가는 나데르의 자동차. 그 속도에서 나데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나데르의 아버지는? 나데르의 딸은? 각자의 무게만큼 견디고 있는 것이리라.
라지에가 신을 믿고 하루 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것이 나는 조금 어리석게 느껴졌다. 그 정도로 신은 맹목적이며 보이지 않는 손길이다. 어쩌면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나한테는 해당하지 않는 사안이지만. 그들을 욕하고 싶지 않다. 책임을 묻는다면. 신을 품은 자신한테 철저히 물어야 할 것이다.
그 손길을 한 번만이라도 만져볼 수 있다면, 나는 신을 믿을 수 있을까. 그것 또한 아닐 것이다. 신은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생겨난 한 줌의 재 같은 것. 구원은 없다. 구원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뿐이다. 마음이 아니라 마음들. 복잡하고 미련한 복수덩어리의 마음들.
신을 의심한다. 나를 의심한다.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무조건적인 믿음을 믿지 않는다.
믿음은 도덕성을 잃어버리고 자기합리화의 수단으로 우리를 장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