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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거울 속에서





연재39. 


이별의 거울 속에서. 이광호




"이별의 거울 속에 우리는 서로를 바꾸었습니다. 당신이 나를 떠나면 떠나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나입니다."

                                                                                                

 -이성복 「이별1






그들 사랑의 역사에서 수없이 사소한 이별들이 반복되었다. 그 이별의 순간들마다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 시간들이 검은 구멍처럼 그들을 집어 삼켰으나, 실낱 같은 재회의 예감은 언제나 그들에게 붙어 다녔고, 그 뿌리칠 수 없는 예감이 그들을 오히려 힘들게 만들었다. 다시는 볼 수 없을거라는 절망감보다는, 이 사랑 때문에 조금 더 많은 괴로움이 남아있을 거라는 어두운 예감이 더욱 무거웠다. 이별은 단 한 번의 칼끝으로 우리의 숨을 거두어가지 않기 때문에 잔인하다. 그들의 하루하루는 이별의 흉내였으며, 최종적인 이별에 대한 기다림 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가장 눈부신 날에도 작은 이별을 연습했고, 아득한 황사처럼 숨 막히는 날도 미래의 이별을 다시 기다렸다. 


이별의 주인은 누구인가?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로맨틱한 거짓말이다. 사랑의 무대에서 아득한 먼 곳으로 떠나는 여행자와 같은 사람이 있고, 남겨진 채 그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낭만적인 이분법이다. '당신'은 사라지는 사람이고, '나'는 남는 사람이라는 도식은 이별을 둘러싼 마지막 환상이다. 자신이 남겨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당신'의 부재에 대해 말할 것이다. 그건 '당신'의 부재를 말하기 위해 '내'가 잠시 떠안는 역할 놀이이다. '나'는 '당신'의 부재를 말하는 방식으로 기다림의 주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사랑에 대해 더 세밀한 고백을 해야 한다면, 아마도 '당신'의 부재가 아니라, '나'의 부재에 대해 말해야 한다. 


한 사람이 떠날 때, 또 한 사람이 남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이 떠나는 그 순간, 또 한 사람은 그 사람과 함께 떠나고 있으며, 한 사람이남겨진 그 순간, 또 한 사람 역시 그 사람처럼 남겨져 있다. 아니라면, '당신'은 떠나는 방식으로 남는 것이다.

이별의 어지러운 순간, 그 산란하는 빛 속에서 주체와 대상은 구별되지 않으며, 두 사람이 떠나는 사랑의 역할과 기다리는 사랑의 역할을 잠시 나누어 가졌다 해도, 그 역할의 궁극적인 차이는 없다. 두 사람은 이별의 순간에도 이상한 방식으로 서로를 교차시킨다. 


'나'는 '당신'을 떠난다. '나'는 마치 '당신'인 것처럼 떠난다. '나'는 '당신'으로서 떠난다.


그는 떠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다만 자신에 대한 어떤 무거운 믿음을 내려 놓으려는 사람이었다. 그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너를 포기 하는 것이 너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야.' 그것이 왜 선물인가를 그녀는 인정하기 힘들었지만, 그것이 선물인 이상, 그는 마지막까지 무언가를 주었다고 할 수 있으며, 그 선물은 그 동안의 그의 선물들과 조금 달랐다. 그의 선물들이 그의 갈망과 죄의식에 연루되어있었다면, 그의 마지막 선물은 자신의 죄의식에 대한 해방을 의도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마지막 선물은 가장 이기적이고 필사적인 선물이다. 그러나 그 선물이 결국 죄의식에 대한 죄의식을 의미한다면?



그의 집에 헐렁한 티셔츠나 칫솔 같은 것을 두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들이 거기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집은 그들이 나누어 가진 공간이었다. 짧은 이별들이 반복되면서, 그녀는 그 물건들을 거기 두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이별과 재회를 반복할 때마다, 물건을 가지고 나오거나 다시 가져다두는 일을 반복하는 것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짧은 이별 뒤에 다시 한 번 그의 집에 갔을 때, 그녀가 쓰던 칫솔과 비슷한 보라색의 칫솔이 다시 놓여 있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그의 집착이나 기다림을 설명하는 기호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칫솔이 다만 그녀를 위한 칫솔이 아닐 수도 있으며, 그 칫솔은 아마도 그 자신도 내부를 알지 못하는 '기다림' 자체를 상징한다는 것을 그녀는 직감했다. 그는 어쩌면 그녀가 아니라, 어떤 기다림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자기 삶의 무의미를 견디는 하나의 자세일 뿐이다.

 

닳아버린 칫솔 같은 시간 앞에서 단 하나의 극적인 이별은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사랑은 단번에 죽음을 맞이하지 않을 것이다. 이별이 단 하나의 선명한 얼굴을 가졌다면, '내' 사랑도 이렇게 남루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별은 언제나 허술하고 보잘 것 없었으며, 사랑이 그러하듯이 영원하지도 않았다.




사랑이 진부한 것은, 이별이 진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허술하고 진부한 이별 가운데서, '나'는 '당신'으로 살았다.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