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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말들의 기록






 집에 손님이 온다고 해서 밖으로 나왔다. 토요일 정오가 되지 않은 시간. 나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6시에서 7시 사이에 눈을 떴고 찌뿌둥한 느낌으로 몸을 일으켰다. 요즘엔 아침에 일어나면 급한 소변이 꼭 마려웠고 새벽 중간에 가는 일도 잦았다. 스물 여섯이 되면서 변한 것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불과 작년 까지만 해도 크게 머릿결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머릿결 보다는 스타일, 볶느냐 자르냐 염색은 무슨 색으로 할 것이냐의 고민들이었다. 중학교때부터 스물 다섯까지 긴 치마보다는 짧은 치마, 머릿결 보다는 스타일. 보여주기가 나의 최대 관심사였다. 스물 여섯이 막 된 시점에서 나는 점점 달라지고 있다. 지금은 적당한 길이의 무릎까지 오는 치마, 머릿결이 상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파마를 하지 않고 있다. 머릿결이 상하는 걸 꼴보기 싫어서 숏커트로 친 일. 힐은 아주 가끔씩. 스니커즈, 컨버스 단정한 스타일을 자주 찾는 일. 맛있는 술을 마시며 춤추는 건 여전히 좋다. 진탕 취하는 건 아마 작년 부터 싫어진 것 같고. 식도염이 너무 심해지니깐 술과 커피를 멀리한 지 꽤 됐다. 전문적인 춤을 배우는 것은 아니지만, 취미로 스트레칭, 단순한 춤 동작들을 배우고 있다. 한 달이 조금 넘었는데 매우 재미있다. 학원엔 어린 친구들이 꽤 많은데, 전문적으로 입시 준비하는 친구들 인 것 같다. 이제 막 고등학생 올라간 여자아이들. 춤을 어찌나 잘 추는지, 그리고 얼마나 다리가 쫙쫙 찢어지는지, 유연하고 절제 되어 있고 파워풀한 힘이 있다. 아. 유연성만은 제발 본받고 싶다. 가르쳐 주는 선생님은 매우 예쁘다. 얼굴이 작고 키가 170이며 몸은 균형있게 말랐다. 팔 다리가 아주 길다. 딱 봐도 현대무용을 한 사람 같다. 선생님은 약간 포스가 있고 웃을 때는 더 예쁘다. 성격도 좋으신 듯. 3개월을 끊었는데, 6개월 이상 배우고 싶은 욕심이 솟는다. 또 욕심만 앞서 나간다. 지금 하는 일을 일 년 이상 해야지 나는 저런 학원도 다닐 수 있고 하고 싶은 공부도 할 여건이 조금이라도 마련될텐데… 직장 다니는 곳에서 일 년 채울 수 있을까? 

그러길 바란다. 엄마는 내가 지금 하는 일을 못마땅해 한다. 비전도 미래도 없는 일이며 계속 사람들한테 무시나 당할 어줍잖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닌 지 두 달 조금 안됐지만 일 다니는 곳에 내가 꼭 필요한 존재인가 싶다. 내가 없어도 사무실은 좀 느리지만 어찌됐든 잘 돌아갈 것 같다. 내가 하는 것은 단순한 잡일들, 아침 청소, 심부름들이기 때문이다. 그치만 내가 컴퓨터활용능력이 있어서 다른 회사에서 유능하게 일을 해낼 수 없으니. 내가 지금 하는 일은 딱 내 수준에 맞는 일일지 모르겠다. 일 년 버티고 나면 나는 스물 일곱. 그 땐 정말 뭘 해야 할까.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전공 살리는 일을 하고 싶던 나는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받으면 바로 몸이 고장난다. 생각하는대로, 마음먹는대로 된다는 말이 어쩔 땐 맞는 것 같기도. 합리화하는 걸 경멸하면서도 나는 합리화를 잘한다. 어렵지만 나한테 맞는 일이 있으면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과연 맞을까. 하고 싶던 일들이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잘 모르면서 이것저것 해보고 싶다는 쓸데없는 허세인 것 같다. 


지금 이어폰에서는 블루문 '우리는 속옷도 생겼고 여자도 늘었다네' 곡이 흘러나온다. '흘러나온다' 이 표현은 내가 참 좋아하고 자주 쓰는 표현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방해하는 스벅의 음악. 미친듯이 소리지르는 성악가들. 아아 똑같은 톤의 저 음들을 삼십분이상 들으니 괴롭다. 몇 주 전부터 이어폰을 이십분 정도 끼고 있으면 왼쪽 귀가 아프다. 작게 듣는 건 아니지만 엄청 크게 듣는 것도 아니다. 조금 크게? 매일매일 이어폰을 끼고 산 삶이 오래 되긴 했다. 몇 달 귀를 쉬게 해줘야하나… 앞에 앉은 할아버지는 머그잔에 커피를 마시고 있고 옆에 창문은 자주 열었다 닫았다 하고 있다. 밖에 바람이 많이 불고 쌀쌀한데, 답답하신가 보다. 바로 뒤에 앉은 나는 할아버지의 행동 덕분에 더 추위를 느껴야한다. 블루문의 음악들은 대부분 좋다. 특히 우리는 속옷도 생겼고 여자도 늘었다네. 이 곡은 아마 고3 끝날때쯤부터 지금까지 계속 애정해 마지 않는 곡이다. 이 곡이 끝난 뒤 underworld 라이브영상을 찾아 틀었다. everything everything. underworld 이 분들은 각자 다 직업이 있는 분들이라고 들었다. 음악은 취미로 하신다고. 예대 3학년 2학기 교양 소리체험 시간 때 엄청 좋은 기계들이 가득한 강의실에서 이 곡을 온 몸으로 들었던 기억. 스피커의 중요성은 매우매우 크다. 아 또 허세 나왔네 ㅎㅎ 제대로 스피커를 활용해서 들을려면 일단 아파트에서 살면 안된다. 단독주택. 지하실이 있는 그런 곳이 적합할 것 같다.



앉아 있는 의자는 딱딱하다. 오래 앉아 있을 순 없을 것 같다. 나는 이제 여길 떠나면 어디로 가야되나.. 그랜드 부다 패스트 호텔 영화를 보고 싶기도 하다. 근데 추우니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어야 겠다. 펜과 공책을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저번주 주말에 본 만신이 생각난다. 보는 내내 힘들었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 있는 무당들의 몸짓, 말들이 이 땅에 살고 있는 한 인간으로서 공감이 가면서도 기분이 더욱 가라앉았다. 감독은 김금화 선생을 많이 애정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평소에 그런 신적인 것, 특히 민속신앙에 관심이 많으며 굿을 보러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옛날처럼 지역 축제로 크게 굿을 여는 곳은 없는 것 같다. 강원도 단오제를 찾아가려고 알아봤으나 단순히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을 위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 같았다. 외곽 지역의 개인의 무당들이 하는 굿을 보러 가고 싶다. 선입견으로는 무섭거나, 엄숙할 것 같은데 그런 굿이 있고 신나는 굿판도 많다고 한다. 그리고 막상 가보면 되게 신나고 재미있다고. 예전에 한국전통문화? 교양 시간 때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무당도 사람이고 영의 말들을 옮기는, 일반인들 보다 길고 험난한 수양을 해야 하는 삶을 선택할 수 밖에 없던 사람이었다. 나는 특별한 선입견이 없고 오히려 이해할 수 없이 호기심에 이끌렸고 많이 찾아보는 편이다. 나한테는 자꾸 알고 싶은 세계이다. 


다시 시를 배우러 다니고 싶다고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할 자신이 없기에 그냥 또 무력하게, 목표 없이 살아가는 것이 익숙하고 그러고 싶은 것이다. 이제 성악가들의 짖음은 끝이 났고 재즈풍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꽤 마음에 든다. 치코와 리타가 생각나네.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집중 잘 못하면서 봤던 영화. 꽤 오래 기억에 남는 영화가 될 줄이야. 색과 선들, 음악은 강렬했다. 

토요일 낮 한시. 자리는 거의 다 찾고 내 앞에 할아버지는 좀 아까 떠났고 그 맞은편 의자에 젊어 보이는 이십대후반 삼십대 초반처럼 보이는 남자가 머핀과 아메리카노를 시켜 먹으며 이어폰을 꽂고 앉아 있다. 



남자친구를 사귀고 싶은 생각은 작년보다 좀 줄은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남자친구를 사겨서 오랫동안 만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힐 때도 있다. 내 형편이 나아지지 않고 경제적으로 집안이 힘들면서 '내 주제에' 이런 생각도 들 때가 사실이다.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만남은 거의 없었다. 굳이 밖을 돌아다니고 싶지 않고 예전엔 친구들이었던 사람들과는 멀어진지 오래고. 종종 찾아오는 외로움은 나를 숨막히게 한다. 이런 외로움은 남들은 모를 것이라고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다가도 정리해 버린다. 내 안의 벽이 두꺼워지고 높아지는 것을 감지한다. 그렇지만 어쩌면 또 사람을 보는, 남자를 생각하는 나의 기준이 생기고 있는 것일수도 있겠다. 내가 부정적인 건 사실이다. 누구보다 의심이 많은 것 또한. 내가 자리 잡으면, 안정이 된다면, 내면이 충만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나는 늘 그 날을 향해 있다. 엄마의 상태가 날이갈수록 좋지 않다. 제작년에 명퇴를 했고 기간제로 일 년 일하고 이번 해 다시 또 기간제로 일할 수 있었는데, 갑자기 변경되어서 엄마가 당황하고 우울해한다. 하는 일 없이 논다고. 31년을 쉬지 않고 일 했는데 아직 갚을 것들이 많아서 실직자 상태로 있을 수 없다고 여기저기 알아보는 엄마가 딱하고 불쌍하다. 딸의 입장에서는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슬퍼하는 걸로 끝이 나서 속상하다. 최저임금 받으면서 일하는데 어떻게 엄마를 도와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먹먹하고 답답하다. 엄마의 상태가 호전되기에는 내가 대출빚이며 뭐며 다 갚아주는 길인데.. 이게 실현 가능한 일인가? 그렇다고 내가 죽을 힘을 다해 열심히 사는 것도 아니고. 몇 년을 바라봐야 하는 걸까. 본인이 아닌 가족인 이상 이정도밖에 생각을 못한다. 말뿐인 걱정이고 잠시뿐인 의식이다. 그리고 변명이다. 


결국 오늘 일기는 하소연과 불안으로 끝났다. 오전에는 구름끼고 흐렸던 날씨가 지금은 낮 한시 삼십팔분. 내 왼쪽 창가에서 따듯하게 쏟아지는 햇볕으로 잠시 또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