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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는 날 바로 오늘








-  대신 나는 종교가 없으며 한편 무신론자라고 주장하고 싶지만 무신론이 뭔지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 그렇게 주장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스님은 굳이 뭔가를 주장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꼭 무언가를 주장할 필요는 없어요."


-  뜻을 알 수 없는 소란과 소음들이 내 등을 굽게 하고 벤치에서 옴짝달싹 못 하게 했다.


-  비 갠 하늘과 태양을 빼곤 시선이 닿는 모든 게 더러웠다. 악취가 나는 진흙이 장딴지까지 튀어 올랐다.

   나는 하우라 대교에서 내려, 걸어서 다리를 건넜다. 곧 콜카타 시내였다. 태양이, 태양이…… 하지만 태양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다. 해야 할 말도 아니었다.

 

-  그렇지만 나는 무슨 생각인가 하고 무슨 말인가 해야 했다. 다만 그게 뭔지 알 수 없을 뿐이었다. 한 시간이나 사이클락샤를 타고 오며 본 것들, 가이드북에도 나오지 않는 빈민가에서 얻은 인상들…… 그것은 인도에서의 첫날 밤에 본 구겨진 소년처럼 십 년, 이십 년 뒤에도 발작처럼 찾아올 기억들. 기억의 질병들, 병든 기억들이었다.


-  바하이 사원의 궁륭을 휘돌아 내려오는 웅웅거리는 소리에 내 마음이 가볍게 일렁였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이뤄진 소리였지만 불안이나 적의 같은 게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윽한 느낌의 소리였다. 


-  나는 궁륭으로부터 벽을 타고 내려와 내 귓전을 울리는 웅웅 소리가 좋았다. 그저 좋았다. 나는 종교도 없고 웅웅 소리가 해석도 되지 않고 바하이교라는 건 들어본 적도 없지만, 가능하다면 그 자리에서 그대로 하늘 색으로 스며들고 싶었다. (…) 그리고 그 잘못들을 어떻게 바로잡지도 못한 채 또 다른 잘못들을 저지르기 위해 항상 길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  그런데 신 없이 살아간다는 게 어디 가능한 일이겠는가. 어제 누군가 신을 죽였다면 오늘 누군가 새 신을 만들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에겐 서로 다른 이름을 지닌 신이 일억이나 된다. 어떤 신은 죽고 나서 부활하기까지 삼일이나 걸렸다고 한다. 어떤 신은 태어나 그저 허공으로 남아 있기도 한다. 어떤 신은 극장에 폭탄을 들고 들어가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신들의 신상은 대부분 미화로 십 달러가 채 안된다. 


-  어떤 남자도 여자도 불타는 머리를 갖고 있지 않았다. 내가 아는 어떤 인간도 불을 이고 그렇게 걷지 않았다. 

  

-  그러니 어쩌면 나는 혀끝의 신을 본 것일 수도 있다. 남자도 여자도 인간도 아니라면 방금 내 혀끝에서 태어난 신일 수도 있다. 일억이나 되는 신이 마음에 들지 않아 오 분 전에 내가 새로 구워낸 신일 수도 있다. 신이라면 나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내 혀끝이 종교의 발상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  그러므로 나의 종교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이제 모든 것은 다시 씌어져야 한다. 




문학과사회 2013 겨울호

혀끝의 남자 백민석








흰 버티컬을 올리면 하얀 





 1

  당신의 군락에선 똑바로 설 수 없다 넘어지는 흰 가로등을 보며 나는 여러 겹의 카디건을 입었다 묵상도 하얗게 눈을 감아도 하얗게 어제 밤 나의 소파도 하얗게 폭신이란 부사도 하얗게 하얗게 나는 적어 두었다



  2

  우산꽂이에 우산이 꽂혀 있었다 하늘에선 구름의 가지 치기가 한창이었다 비가 후드득. 주머니에 붉은 손을 숨겼다 우산 쥘 손이 없어 비를 맞는다 자꾸 발끝으로 흘러내리는 물들이 핑크 핑크 레드. 나는 붉은 숲에 살던 붉은 난쟁이



 3

  내게서 발현되는 붉음이 당신에 대한 쿠데타 같이 보여 숨기려 했지만, 내가 붉고 네모난 색을 떠올렸을 떄 건물은 무너졌다 붉은 먼지가 보도 블록 틈까지 붉게, 앉았다



 4

  하양, 내가 지정할 천연기념물 일 호. 역사는 혼색으로 개혁되었다 하양과 빨강 명도로 그려지는 도시의 끔찍한 문명이 나로 인해 시작되었다니



 5 

  발이 닿는 곳마다 붉게 오염되던 당신이 군락이 그립다 나의 군락에선 나의 발자국을 볼 수 없어요 붉고 붉어 아무 흔적도 남지 않는 붉은 투명인간 그대여 당신의 흰색은 더욱 아름다워요 망명도 안되는 나의 붉은 군락에서 나 좀 없애줘요



 6

  나의 군락에선 똑바로 설 수 있다 사람들은 믿지 않았지만 난 가끔 당신의 하얀 생일에 초대 받는 꿈을 꾼다








여름 정원



누가 내 꿈을 훼손 했는지


하얀 붕대를 풀며 날아가는 새떼, 물을 마실 때마다 새가 날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림자의 명치를 밟고 함께 주저 앉는 일 함께 멸망하고픈 것들


그녀가 나무를 심으러 나갔다 나무가 되어 있다


가지 굵은 바람이 후드득 머리카락에 숨어 있던 아이들은 흔든다 푸르게 떨어지는 아이들


정적이 무성한 여름 정원, 머무른다고 착각할 법할 지름, 계절들이 간략해진다


나는 이어폰을 끼고 정원에 있다 슬프고 기쁜 걸 청각이 결정하는 일이라니 차라리 눈을 감고도 슬플 수 있는 이유다


정원에 고이 잠든 꿈을 누가 훼손했는지 알 수 없다 눈이 마주친 가을이 담을 넘지도, 돌아가지도 못하고 걸쳐 있다


구름이 굵어지는 소리 당신이 땅을 훑고 가는 소리


우리는 간헐적으로 살아 있는 것 같다







성동혁 

제 5회 세계의 문학 신인상









10월과 11월에는 서류와 면접을 준비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많이 바쁘지 않았지만 조급하게 무언가를 준비한 것은 맞다. 12월에 발표가 났고 생각한 것보다 좋은 결과가 있어서 다행이다. 고맙다. 

몇 마디의 대화를 나눌 수 있던 선생님. 큰 위안이었으며 좀 더 앞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어디를 가야할 지 정해졌지만 나는 아직도 고민하고 있다. 


결국 가고 싶던 '학교'를 갈 것이고, 소속감을 가질 수 있을까. 나는 오래도록 하고 싶은 것을 잊지 않고 매진했으면 좋겠다. 



준비하는 기간 동안 가급적이면 친구를 만나지 않으려 했다. 말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임을 잘 알고 있지만, 자꾸 간과하고 있다.



나는 신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믿는다. 그렇지만 어떤 종교를 무조건적으로 믿을 생각은 없다. 나에게 종교는 선택이다. 나이를 먹고 많은 시간이 지나면 나의 가치관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각각의 의견이며 선입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벽이 있다면 그것은 선입견이다. 종교를 가진 모든 이들이 그렇진 않겠지만 대부분의 종교인들은 나와 닮은 사람이 한 명 더 생겼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내 생각이 누군가에게는 변명거리로 들릴 수도 있다.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에게 어떻게 진심을 잘 전달 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친구에게는 거절이고 거부의 의미일테니까. 어찌됐든 상처를 주게될 것이다. 




낙엽이 흩날리는 공간에서 산다. 그 날의 내가 살아있음을, 앞으로도 영원할 것을 예감한다. 

달라지는 내가 있고 그대로인 내가 있다. 순간에 충실하기로.

이번 가을에서 겨울은 매우 추웠으며 또한 따뜻했다.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이 떠났고 나도 사라지고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각자의 세계 속에서, 나온 적 없는 울타리에서. 

모든 착각과 오만을 부둥켜 안고 산다. 



모든 게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겠다. 더 많이 소통하고 교류하며 지내도록. 용기를 내야 할 때와 아닐 때의 지혜를.



친구가 나를 걱정했다. 페이스북도 안하고 카톡도 탈퇴하고… 너무 '익명'의 사람이 되는 것 같다고.

과연 그런 걸까. 저런 것들을 안할 때 외로움이 증폭된 적은 있다. 분명히. 

나는 최대한 나한테 멀어지고 싶고 한편으로는 내가 나를 더 잘 돌봐야 한다. '극단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친구의 말에 그런가 하며 살짝 웃고 넘겼지만 내 몸에 한기가 돌았다. 


누구나 사람은 외롭다고 한다. 인간이기에 외로운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외로움과 쓸쓸함의 차이는?


외로움은 나를 충동적인 삶을 살게 하고 쓸쓸함은 묵묵히 견디는 법을 알려주는 지표 같은, 전환점이다. 


서로의 의견을 알려주고 존중해주는 관계는 어렵다. 충고하게 되고, 비웃게 되고, 어리석으로 보게 되고, 한심하게 보게 될 때가 많을 것이다. 지금은 안 보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나는 나를 돌아본다. 내가 잘못했던 점과 어리석었던 점들이 무엇이었을까.

내가 정말 놓치고 있는 것들이 뭘까. 잘못을 반복할 때가 많다. 그리고 나의 고집을 한 번 더 생각한다. 

내 자신에게 정직하고 싶다. 내가 나를 속이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애당초 합리화하고 변명 할 마음은 들지 않는다. 앞으로 내가 어떤 것을 포기할 지 포기하지 말아야할 지를 생각한다. 



머리가 무겁다. 

아리다.

지키고 싶은 것들이 없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