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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9일의 일기






시를 안 쓴지 다시 오래되었고. 무슨 말이 필요있을까 생각한다. 

생각과 생각을 하다 보면 부서지는 것은 없고 무언가 단단함을 넘어서 딱딱해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굳어가고 있다. 생각을 잊어버릴 생각으로. 

임경선 나라는 여자를 읽고 '준비중' 의 상태가 얼마나 무기력한 단어인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언제나 늘 준비중이라는 것.  ~를 준비하고 있어. 이 문장의 피곤함을 느낀다.

상대는 요즘 뭐해? 라고 묻는다 나는 내년에, 다음 달에, 이렇게 늦장을 부리고 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나는 내년을 기약한다.

매일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고,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 것은 단순히 나의 바람인가.

그 희망을 실현 시키기 위해 내가 무엇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는 내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오늘은 오랜만에 교보에서 일할 때 알던 동생을 만났다. 그녀와의 예전 만남을 떠올렸을 때 편안한 느낌 보다는 불편한 느낌이 강했다. 어딘지 모르게 겉돌고 있는 느낌. 기가 세고 강하지만 한없이 여리고 시시때때로 무너질 것 같은 바닥의 그림자가 보인 그녀. 그녀의 확고한 의지와 현재의 열정 속에서 나는 조금의 피곤함을 느꼈다.

오늘 만났을 때는 그 불편함이 조금은 줄어 들었다. 그녀가 변한 걸까. 아님 내가 변한 걸까. 우리 둘다 6월 보다는 7월, 7월 보다는 8월... 천천히 미세하게 변화하고 있다. 좀 더 '나'를 들여다 보는 일을 충실하게. 실천한다는 것. 살아가고 있음을. 안다. 그녀를 조금 불편하게 생각했던 나의 선입견이 나의 무지임을 알아가고 있다. 더 깊은 대화를 하면 내가 모르는 그녀가 또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함부로 이 사람을 앞으로 만나지 말아야 겠다고 단정 짓는 일은 나의 섣부른 판단이고 나의 선택이다. 언제든지 후회할 가능성의 문을 열어두는 것이다. 물론 나와는 인연이 아닌 사람을 붙잡고 있는 것 또한 어리석은 일이겠지만 인간관계에 있어서 신중함이 시간과 비례관계있을 때가 조금 더 많은 것 같다. 


며칠 전 라디오스타에서 안선영이 한 말이 계속 생각난다. 자신이 정한 '선'. 예를 들면 이 3가지 유형의 사람은 절대 만나선 안된다. (내가 알아서 해석하기에는) 폭력을 행사하는 남자, 욕을 하는 사람 등등의 상식 이하의 사람들을 말하는 것 같다. 이런 비도적인 사람을 빼고는 너무 사람을 내쳐서는 안된다고 했다. 안선영 말에 동감한다. 사람 인연은 자신도 모르게 다가오고 있는 것인데, 너무 확신을 가지고 대하면 중요한 사람을 떠나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인연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우연히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 있다. 몇 년후의, 몇십 년 후의 나와 너는 또 다르게 다른 모습으로 만날텐데 말이다. 나는 정확한 가이드라인이 아닌 이외의 사람들과 연락을 끊고 매몰차게 안 본 경우가 대다수이다.(나의 경우, 헤어지자는 소리를 사귀는 상대에게 쉽게 많이 뱉어내는 스타일이다. 이런 나의 한마디에 떠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다음날 바로 후회했지만 연락을 하지 못했다. 그 일이 평생 후회될 것 같다.;)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그, 그녀를 관찰하고 지켜보았다면.  

밀물처럼 어느 순간, 후회의 깊이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거리가 너무 벌어져 있었다. 내가 생각한 '우리'의 그림이 달라지면 어때. 라는 마음가짐도 필요하다. 조급함을 무시할 필요가 있고 확신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다. 꼭 내가 상상한 그림이 아니더라도, 그와 나는 소중한 사람의 연으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