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즙을 마셔요
그 때, 당신, 내 옆에 있었나요
초록이 아닌 검은색이에요
케일, 치커리, 명일엽, 보릿물이 아니었던가요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제 기도 속에 나타난 등장인물들을 갈아 마셔요
성모 마리아를 향한 기도는 다섯 발가락의 감각을
조금씩 무디게 만들어요
눈을 감으면 왼손은 자연스럽게
이마, 가슴, 왼쪽어깨, 오른쪽어깨
이 순서가 아니었던가요
창문을 지켜봐요
커튼의 힘을 믿으세요
부풀어 오르는 손톱 틈새로
성당 안 공기가 들어오다 사라졌다 들어와요
밀려나오는 살을 뚫고
먼지들은 다닥다닥 손톱 위에 손톱을 만들어가요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깍지 낀 손은 풀리지 않아요
기도 속에는 뿌연 얼굴만 흩날려요
당신, 내 옆이 아닌, 어디에 있었나요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나요
창문 가까이 다가설수록
햇볕의 거짓 증언이 창문을 감추고 있어요
커튼 뒤에 당신, 거기, 숨었나요
제 기도 속에는
녹즙을 마셔요
아, 녹즙이 아니었던가요
- 시가 아니라고 합평 받은 글. 10분만에 써내려갔던 글이었다. 단숨에 썼던 글.
시 쓰는 시간에 합평 받기 위해 낸 글이 너무 부끄러웠다.
읽어 내려 가는 내내 얼굴이 빨개졌다.
매일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하고, 건강식품이나 약을 챙겨 먹는 일.
자기가 쌓아 올린 규칙, 자신만의 규율을 지켜가는 사람들.
거기서부터 의심이 들었다.
이 규칙을 지키고 살면 나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는 건강해질까. 이 노력들은 무슨 희망일까.
하는 의심. 단순하게 지켜가는 일상을 의심하고 싶었다.
이런 생각으로 이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