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경 썸네일형 리스트형 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 가끔 생각하지, 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 나는 구십이 넘어 연가 한 편을 꼭 쓸거라고 글쎄, 그 하루 하루 그대와의 시간을 어떻게 나는 시로 쓸 수 있을까 눈부시게 담담하게 지워져간 그 시간 낡은 일기를 들여다보며 하루 먹어야 할 통증의 알약을 넘기며 아마도 기억나는 만큼만 잊힘에 새겨진 일렁이는 무늬만큼만 나는 쓸 수 있겠지 나를 일으켜주던 간병인은 말할지도 몰라 오늘 얼굴 환하세요 꼭 새색시, 같으세요 나는 웃으며 대답하겠지 오늘은 구십 년 동안 기다려온 연가를 쓰는 날이라오 언젠가 그대가 그대의 가난 속에 있던 가장 아름다운 추억을 나에게 보여주었을 때 혹은 가난의 굴욕을 보여주며 슬몃, 짧게, 미안해요, 라고 했을 때 낯선 도시 좁은 골목에서 여관에 갈 돈이 없어 껴안고 최소한만 서로를 만..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