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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나는 무엇을 굳게 믿고 있던 걸까. 조용히, 나는 그를 떠나고 싶다. 말이 안되는 문장을 쓴 것 같다. 심한 다툼을 해도, 서로의 의견이 좁혀지지 않아도 그가 밉지 않다. 단순히 그 순간 서로의 대화법에 화가 나는 것일뿐, 너는 왜 그렇게 해? 나는 이런데. 나는 이래. 너도 이렇게 해. 라고 말하는 나의 어법과 고집에 화가 나는 것이다. 그가 싫어졌으니 그를 떠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하는 순간 말이 안돼, 믿고 싶지 않아 라고 생각한다. 몇 번의 칼집은 돌아 갈 수 없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라고 알려준다. 나는 그 때 그 선택을 했고 지금은, 떠나가는 그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단지 내가 믿고 있던 '그' 를 향해. 나는 그를 혐오하기 시작했다. 서로를 증오하면서 우리는 여기서 끝이야. 라고 중.. 더보기
밝아지기 전에 사람 몸을 태울 때 가장 늦게까지 타는 게 뭔지 알아? 심장이야. 저녁에 불을 붙인 몸이 밤새 타더라. 새벽에 그 자리에 가보니까, 심장만 남아서 지글지글 끓고 있었어. 내가 그림을 바라보는 동안 그림도 골똘히 나를 바라본다. 서로의 눈길이 어긋나, 서로가 볼 수 없는 곳을 더듬는다. 부질 없는 심문과 대답사이, 체념과 환멸과 적의를 담아, 무섭거나 쓸쓸하게 서로의 얼굴을 응시하는 시간. 눈이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는 시간. 내 죽음 속으로 그가 들어올 수 없고, 내가 그의 생명 속으로 결코 들어갈 수 없는 시간. 그 모든 것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시간. 오직 삶을, 삶만을 달라고, 누구에게든, 무엇에게든 기어가 구걸하고 싶은 시간. 그 시간들이 충분히 멀어지지 않았다. 모래톱 저쪽의 바다처럼, 아.. 더보기
빈 걸음 작년 12월에 여행을 다녀왔다. 종강과 동시에 급하게 가느라 마음도 몸도 고생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처음으로 아시아 국가권에서 벗어나 유럽으로 간 여행은 그리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 부족한 형편으로 가느라 엄마가 많이 힘들었고 나 또한 억지로 밀어 붙여서 가는 거 아닌가 싶은 마음 때문에 불안하고 불편했다. 덴마크와 스페인, 각각 친구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유학생이었고 6개월 정도 머무르고 있었고 1월쯤에 한국에 들어 올 친구들이었다. 각 나라의 거리, 골목들, 상점, 하늘의 색, 햇볕, 공기의 냄새를 잊지 못한다. 마드리드는 꼭 다시 가보고 싶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반나절을 보냈다. 황홀했고 슬펐다. 소피 왕립 예술센터를 다 보지 못한게 너무 아쉽다.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가기를 기원해야겠다. 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