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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말들의 기록 집에 손님이 온다고 해서 밖으로 나왔다. 토요일 정오가 되지 않은 시간. 나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6시에서 7시 사이에 눈을 떴고 찌뿌둥한 느낌으로 몸을 일으켰다. 요즘엔 아침에 일어나면 급한 소변이 꼭 마려웠고 새벽 중간에 가는 일도 잦았다. 스물 여섯이 되면서 변한 것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불과 작년 까지만 해도 크게 머릿결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머릿결 보다는 스타일, 볶느냐 자르냐 염색은 무슨 색으로 할 것이냐의 고민들이었다. 중학교때부터 스물 다섯까지 긴 치마보다는 짧은 치마, 머릿결 보다는 스타일. 보여주기가 나의 최대 관심사였다. 스물 여섯이 막 된 시점에서 나는 점점 달라지고 있다. 지금은 적당한 길이의 무릎까지 오는 치마, 머릿결이 상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파마를 하지 않고 있다. 머.. 더보기
자의식의 황금기 학교를 가고 싶어 준비하던 작년 가을, 합격 소식을 들은 날부터 내 시간은 불안으로 잠식되었다. 아르바이트를 짧게 하고 그만 두고 그 때부터 쭉 내 욕심인 대학원을 갈 생각으로 살아왔다. 응원해주는 단 한 사람이 있었기에 밀어 부칠 수 있었다. 무엇을 보고 나아갔던 걸까.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분명히 또렷하다. 당분간은 멍-하게 사는 일이 나한테는 당연한 일인마냥 죄책감을 느끼고 살고 싶지 않다. 학교는 가지 못했고, 늘 불안하고 찝찝했던 것이 현실이 되었다. 무리하게 대출까지 받아가면서 학교를 가야하는 건지 속상했다. 때가 되면 어떻게든 일이 내 쪽으로 풀릴 것이라는 헛된 상상을 지니고 살았다. 그럴 줄 알았다. 돈 때문에 못 간 이유가 가장 크지만, 무시 못하는 다른 이유들도 있다. 사람.. 더보기
헤어지는 날 바로 오늘 - 대신 나는 종교가 없으며 한편 무신론자라고 주장하고 싶지만 무신론이 뭔지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 그렇게 주장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스님은 굳이 뭔가를 주장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꼭 무언가를 주장할 필요는 없어요." - 뜻을 알 수 없는 소란과 소음들이 내 등을 굽게 하고 벤치에서 옴짝달싹 못 하게 했다. - 비 갠 하늘과 태양을 빼곤 시선이 닿는 모든 게 더러웠다. 악취가 나는 진흙이 장딴지까지 튀어 올랐다. 나는 하우라 대교에서 내려, 걸어서 다리를 건넜다. 곧 콜카타 시내였다. 태양이, 태양이…… 하지만 태양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다. 해야 할 말도 아니었다. - 그렇지만 나는 무슨 생각인가 하고 무슨 말인가 해야 했다. 다만 그게 뭔지 알 수 없을 뿐이었다. 한 시.. 더보기